고대 조선반도의 수수께끼 (7) - 신라 왕사

신라와 가야 쪽은 아직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중이고 계속해서 기존의 내용을 뒤집어버리는 결과가 나오고 있으며 
그냥 신라 왕사만 분석해 보려고 해도 필연적으로 가야사와 일본사가 밀접하게 연동이 되므로 다 비교해 봐야 하고
추리(?)하며 놀기에 굉장히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이 쪽 문제는 생각만 하면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글을 올릴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름대로의 정리를 해 놓고 지나가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써 보았다.

어차피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해서 재미로 써 보는 것이니 지적 환영한다.
※의외로 이런 부분은 나무위키러가 제법 상세하게 연구결과들을 올려주고 있어서 꽤 재미있다.
(진한, 변한, 금관국, 반파국, 안라국 등등...)

신라의 왕사는 가문의 영광 등의 이유로 유구한 세월에 걸쳐 많은 조작과 왜곡이 가해져서 
문헌에만 의지하면 대략 난감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본인은 고고학적 성과와 꺼무위키에서 질색을 하는 일본측의 기록을 존중하며, 급진적인 수정론을 도출했다.
복잡하니까 '정사'인 삼국사기의 내용을 기본으로 놓되 이상하다 싶은 부분은 다 바꿔봐야 한다는 입장.




1. 혁거세/불구내 거슬한 (연대 미상)

불구내 는 신라 왕조의 공통조상으로 대접받는다.
그의 실체는 전혀 알 수 없다.
죽어서 오체분시가 되었는데, 이것의 의미는 불명이다.
단지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것인지, 영적 권위를 나눠서 소장하려 다퉜다는 것인지...

이 시대의 기록 중 특기할 만한 것은
진한이 고조선의 유민이고 마한왕의 간섭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왜인 호공'이라는 설정이다.
연대 미상이지만 이 부분들 만큼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2. 남(해) 거슬한/차차웅 (연대 미상)

남 은 제정일치 사회의 흔적을 암시하고 있다. 추대받아 왕이 되던 시절이다.
역시 그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탈(해) 을 '대보'로 삼았다는데 당연히 그 당시 대보라는 명칭은 없었을 것이다.
기록상 대보는 사실상의 실세에게 주어진 직위로 보인다.
이 즈음부터 종교 제사장과 실질적인 왕이 분화하기 시작했을 수 있다.



3. 유리/누리 (연대 미상)

유리 는 본격적으로 신라 왕계가 분화하는 것을 상징한다.
일단 그의 시대에 락랑과 다투고 락랑이 망하면서 유이민이 들어왔다는데,
이는 고(구)려와 중화 력사를 참고하며 기록을 덮어씌운 과정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기록이 후세에 있었던 일을 소급해 써 둔 것일 뿐이라 별 내용이 없다.

문제는 그가 일(지) 또는 허루 갈문왕의 사위라는데 그들의 정체가 더 궁금하다.
왜냐하면 일(지), 허루 의 이름은 수십 년 뒤(?) 기록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슬슬 신라 왕사의 연대 인상이 2주갑 따위는 가볍게 능가한다는 의심이 시작된다.

아마도 사서와 족보를 교묘하게 결합하고 편집한 집필진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4. 탈(해) (연대 미상, 4세기?)

탈 은 새로 외부에서 유입된 인사(도래인)이다.
배를 타고 동해안에 상륙해 울산과 경주 사이에 세력을 형성하였고,
먼저 발달한 미마나의 철기 기술과 연관이 있다.

다분히 후기신라 및 고려시대에 첨가된 불교적 윤색이 드러난다.
그의 아버지인 함달파는 불교적이며, 출신지 다파나가도 서역 출신의 느낌이 난다.
그의 성씨라는 석 은 샤카무니의 샤카 와 고대 발음이 유사하다.
그(와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공유하는 토함산은 경주 동해안에서 그의 유입경로를 방증한다.

참고로 출신이 왜의 북동쪽이라는 것은 단지 연막작전일 뿐이다.
그가 미마나에서 수로(?)에게 패배하여 도망쳤고,
같은 도래인(?) 호공의 지지를 받은 도래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기록하기는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호공의 집(월성)이 양산에 있었다는데
설화에 따르면 양산촌은 이씨 계통 알평과 알영 등이 자리잡은 땅이라 뭔가 혼란하다.

백제와 처음 싸우기 시작했다는데 백제와 국경을 맞댄 것은 3~4세기의 일이므로
다음 왕인 파사의 4세기론과 맞물리면 대충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해야 할 듯 하다.

다만, 이렇게 되면 탈(해)~구추~발휘~이칠(이매)~나(해) 무려 5대가
4세기 전반부에 바글바글 몰려버리는 참사가 발생하게 된다.
뭐 어차피 탈(해) 알(지) 둘 다 선조 추숭사업으로 조작된 것이니까
실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아닐 듯 하다.
2대째라는 구추, 세한(성한?) 도 역시 존재 및 연대가 불분명하니...



5. 파사 (연대 미상, 4세기?)

파사 는 허루 갈문왕의 사위라고 하는데 기괴하게도 유리 와 같다.
초기 정복군주처럼 서술된 파사 는 실질적으로는 4세기 즈음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존재했다면 4세기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3가지 있다.
영토 확장이 고고학적으로 대충 그 시기부터라는 것,
일본서기에 파사 매금이 등장한다는 것,
이름인 파사 가 매우 불교적인데 대충 이 시대에 불교가 처음 전래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사 와 수로 의 일화는 수로 역시 4세기 경의 인물로 의심하게 만들며,
여기에 맞추면 가야계 왕사가 고작 10대 정도 뿐인 이유가 잘 설명이 된다.

일본서기에 파사 와 미사흔 이 동시대에 등장하는 것은,
실제로 동시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대목이 워낙 왜곡이라 짜깁기일 수도 있다.



6. 지마/기마 (연대 미상, 4세기?)

지마 는 한기부 마제 갈문왕의 사위라고 하는데,
파사 시대 기록에 따르면 수로 가 한기부의 우두머리를 암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제 세력과는 손을 잡고 가야 세력과는 싸운 기록이 많다.

그 외에는 특기 사항이 없는 편이다.



7. 일(성) (연대 미상, 4세기?)

일(성) 은 같은 성왕인 실(성) 등과 함께 정체가 불문명한 왕이다.
아도 를 갈문왕에 삼았다고 하는데 아도 의 정체도 불명이다.
게다가 보통 갈문왕을 즉위 초기에 추봉할 것인데 한참 뒤에 했다.
여러모로 알 수 없는 정황이다.

행적은 대체로 북쪽 국경에 집중시켜 두었다.



8. 아달라 (연대 미상, 3~4세기?)

역시나 이름이 은근히 불교적 느낌이다. 
지소례 의 딸의 아들이라는데 지소례 는 또 누구인지 모른다.

히미코가 이 시대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아마 사료간 연대 끼워맞추기의 결과일 것이다.
곧이곧대로 보면 아달라는 사료교차상으로는 3세기의 인물이며,
계보상으로는 4~5세기의 인물이라는 셈인데 굉장히 난감해진다.
따라서 히미코 사신 기사는 다른 곳에서 끌어다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히미코가 혼자 70년 이상 재위했을 것이라는 소리는 신빙성이 낮으며,
사신을 보내는데 굳이 즉위하자마자 신라, 죽기 직전에 중국으로 나눠서 보낼 근거가 없다.

재위 후기의 기록이 전혀 없는데, 정권 교체기의 정변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억지로 연대 끌어올려서 맞추다가 더 이상 지어낼 내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일단 '시조묘에 사건이 있었다'는 서술이 있으니 뭔가 문제가 있었긴 할 것이다.

중간 정리하자면 제대로 된 신라 왕사는 4세기부터고,
소위 말하는 박, 석, 김 3계통은 한동안 동시에 공존하였던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통합된 것이 나물 또는 지대로(지증) 이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사로국 내에서만의 일이었는지,
아니면 소문국(조문국) 등 옆동네의 일이 혼입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빨리 유교 탈레반들을 탱크로 진압하고 신라 왕릉들을 전부 발굴해야 한다.



9. 발휘 (연대 미상, 4세기?)

성인이라고도 했다고 하는데 기묘하게도 비슷한 일(성) 실(성) 처럼 가계도가 불분명하다.
지증(지대로) 처럼 나이가 많으면서 후계자와의 나이차가 꽤 있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뿌리의 옛말인 불휘와 은근히 이름이 비슷하다.

소문국(조문국) 을 정벌했다고 하는데 이 나라가 고고학적으로는 4~5세기까지 존속했다고 한다.
소문국(조문국)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원조 진변한 24국 목록에는 누락되었고,
사로국과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자체적으로도 존속한 모습이고,
발굴된 유물 중에 고(구)려 및 백제 와 연관된 부장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과연 이 나라(?)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수수께끼이다.



10. 나(해) (연대 미상, 4세기?)

일단 아버지라는 이매 에 대해 알아보아야겠다.
기묘하게도 그는 기록상 명확히 갈문왕 칭호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
그의 형이라는 골정 이 세신 갈문왕이라고도 되어있는 것에 비하면 이상한데,
훗날 미추(미소) 가 이칠 갈문왕의 딸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있다.
柒↔質↔買 로 혼동된 것이라면 해결 가능해 보인다.

중요한 포상8국 전쟁이 이 시대에 일어났다고 한다.
문제는 석씨 계보가 5대에 걸쳐 4세기 전반에 집중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일단 탈(해), 구추 등은 반쯤 지어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남아있는 사서의 계보는 족보를 만들면서 같이 만들어낸 신화가 많으므로 감안해야겠다.

아들로 날음(리음), 우로(우루)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서마다 날음(리음) 은 왕손이라고도 하고 정체가 불확실하다.
유례(유리) 기록에 따르면 나음 갈문왕은 박씨 계통이라는 소리가 있다.
그렇다면 날음(리음) 은 나(해) 의 친자는 아닐 수도 있겠다.
따져보면 친자인 후계자를 직접 이벌찬에 임명한 경우가 없어서,
왕손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왕손 쪽이 맞다면 이것은 왕의 손자가 아닌 그냥 왕족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11. 조분 (연대 미상, 4세기?)

골정(세신 갈문왕)의 아들이자, 구도 갈문왕의 딸의 아들이라고 한다.
아버지 골정 을 갈문왕으로 추봉하지 않은 것,
우로(우루) 를 서불한(소부리지간) 에 임명한 것,
갑자기 여기서부터 이벌찬이 서불한으로 은근슬쩍 바뀐다는 것 
정도가 특이하다.



12. 첨?(해) (연대 미상, 4세기?)

조분 의 아우라고 한다.
즉위한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 골정 을 세신 갈문왕으로 추봉한다.
골정을 세신 갈문왕으로, 서불한을 장훤으로 교체하고 
이듬해에는 원래 서불한인 우로(우루) 가 왜 에게 살해당한다.
동쪽 연못에 룡이 나타난다.
권력 투쟁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13. 미추(미소) (연대 미상, 4세기?)

구도 갈문왕의 아들이자, 이칠(이매?) 갈문왕의 딸의 아들이라고 한다.
석씨와 달리 가야 및 왜와 싸웠다는 기록이 없고 백제와 싸웠다는 기록만 많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역할을 분담해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선왕과 마찬가지로 동쪽 연못에 룡이 나타난다. 무슨 의미인지는 불명이다.
기록들이 전반적으로 후손에 의해 윤색된 티가 난다. 전형적인 성군의 이미지들 뿐.
신하들 중에서 정원, 홍권, 광겸 등은 후세에 한자식 이름을 갖다붙힌 듯 하다.
심지어는 이 왕이 실존했는지 조차도 불확실하다. 
4세기에 실존했다면 태조 성한왕이 이 사람일 수도 있다.

빨리 유교 탈레반들을 탱크로 진압하고 신라 왕릉들을 전부 발굴해야 한다.



14. 유례(유리) (연대 미상, 4세기?)

나음(날음/리음?) 갈문왕의 딸의 아들이라고 한다.
선대 동명의 왕 때문인지 출생 설화가 겹쳐버리는 등 상당히 안습하다.
왜 원정 시도 기록은 후대의 실(성) 왕과도 겹치는 부분이다.
게다가 감히 김씨를 띄워주기 위해 이서고국과 죽장릉의 일화를 삽입시켰다.
덤으로 다음 왕인 기림 과 재위기간이 똑같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15. 기림 (연대 미상, 4~5세기?)

조분의 아들 또는 후손 걸숙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대방과 락랑이 항복했다는데 실제 년도는 다음 왕 때이고,
아마도 망해가면서 유민이 먼저 흘러들어왔을 수는 있겠다.
중원 고(구)려비 에 의하면 매금 기忌 가 등장하는데,
基와 忌가 발음이 고대에도 비슷하기 때문에 이 왕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지祗?祈?마/기마, 눌/노(지祗?)일 수도 있고 실제 이름을 모르는 자비 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4세기도 아닌 5세기로 넘어가는 셈이다.


16. 흘(해) (연대 미상)

이름인 흘/헐/걸 은 선왕의 아버지라는 걸숙과 비슷하다.
놀랍게도 다음 왕인 나물 과 재위기간이 똑같은데,
30년 이하라면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무려 46년 짜리가 일치하며,
굉장히 드물 수 밖에 없는 우연의 일치이다.
게다가 이쪽은 기록이 상당히 부실한 편이다.
작명 자체는 그럴싸하지만 실존 여부 혹은 재위 기간이 불투명하다.


17. 나물 (4세기 후반)

여기서부터는 대충 크게 어긋나는 부분은 없겠지만,
금석문에 따르면 지대로~모즉(지) 같은 경우도
후세의 관점에서 끼워맞추느라 미묘하게 어긋난 부분은 감안해야한다.

재위 초기에 '시조묘의 나뭇가지가 붙어 이어졌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부터 슬슬 정신없던 계보의 교통정리가 되는 모양이다.



18. 실(성) (5세기 전반)

일(성), 발휘 에 이어 정체불명의 마지막 성왕이다.
namu위키에서는 금석문에 있는 사부(지) 왕이 습보 갈문왕일 것이라고 하는데,
중세 한자 발음에 의하면 實과 習의 발음도 매우 유사한 편이다.(고대는 다르게 재구됨.)
기록할 때 습보 의 선임인 눌/노(지) 를 나중에 쓰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니,
사부(지)/습보 가 실(성) 의 실제 이름일 가능성이 있겠다.
기록만 봐도 미사흔 과 미사품 이 동시대 동명이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금석문에 평민으로 추정되는 미추(미소) 의 이름도 등장하니...



?? 이사(지) (5세기)

금관총 왕릉에서 나온 이사(지) 왕은 누구일까?
본명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자비 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은근히 눌/노(지)도 발음이 비슷하긴 하다.
다만 아직 왕이 여러명인 상태라면 박씨 석씨 계통의 다른 왕이었을 수도 있겠고,
갈문왕과 서불한도 엄연히 왕의 일종이니 그 중 누군가일 수도 있겠다.

빨리 유교 탈레반들을 탱크로 진압하고 신라 왕릉들을 전부 발굴해야 한다.


by 지오-나디르 | 2021/03/08 21:00 | 몽상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illusionia.egloos.com/tb/751283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광주폭동론 at 2021/03/08 22:55
5주갑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않죠.

삼국사기에는 마한이 8년에 망했다고 되어 있지만 진서에는 마한의 조공 기록이 289년까지 나타난다.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는 백제가 마한 50여국의 하나로 나오고 신라가 변진 24국의 하나로 나오지만,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왕릉비에는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나오지 않고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안라 등만 나온다. 따라서 삼국지와 광개토왕릉비 사이에 한국에서 큰 재편이 있었으며 그 시기는 서진이 망할 즈음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2487
Commented by 광주폭동론 at 2021/03/09 07:03
우로에 대해서는 60년 뒤로 물리고 장수가 아니라 왕이었다고 설정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http://qindex.info/i.php?x=552
Commented by 광주폭동론 at 2021/03/09 08:45
고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 왕조의 기원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이설이 존재합니다.
http://qindex.info/i.php?x=5795
풀기가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광주폭동론 at 2021/03/09 10:58
탈해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출운 또는 단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http://qindex.info/i.php?x=6187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