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조선반도의 수수께끼 (3) - 신라 초기 역사의 혼란
신라 초기는 고의적으로 윤색하거나 소급한 내용들이 눈에 띄는 편이다.

1. 연대의 인상 - 조선인들은 일본서기의 2주갑인상을 죽어라고 까대지만, 따져보면 신라도 1~2갑자 정도 인상시킨 듯한 기록들이 눈에 띄는 편이다. 파사왕의 정복기록이나 나해왕의 포상팔국의 난, 가야 세력의 수로왕과의 교류 기록, 왜 세력이 남긴 기록과의 교차검증 등을 함께 비교하며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2. 3대 성씨의 도입 - 금석문을 비롯해 각종 기록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박석김 3대 왕성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반적으로 진흥왕 김+삼맥/심맥 시대 정도로 추측된다. 나물왕 이전에는 현대 유교적 종법이 적용이 되지 않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의심되며, 부계 계승과 모계 계승이 혼재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표적인 증거로 '갈문왕'이 있다. (예시를 들자면 박아도와 김아도가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길어지니 넘어가고...)

3. 6부의 명칭의 소급 - 금석문에서는 왕이 속한 부 또는 왕위의 직계나 부계 계승이 일어나는 부는 喙(훼/탁)부, 왕비가 속한 부 또는 왕위의 방계나 모계 계승이 일어나는 부는 사(沙)喙(훼/탁)부라고 하고 있고(갈문왕은 여기 속하는 것 같다?), 나머지 4개 부는 들러리로 나오는 것 같다. 이러한 호칭은 명백히 삼국사기 등에서 나온 6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4. 각간? 대보? 서불한? - 이 3개의 직위는 훗날 모즉지(법흥)왕 때 확립되었다는 17관등과는 또 다른 체계인데 뭔지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직책은 서불+한인데, 일본측 기록에서는 소부리+지+간이라고 나온다. 그럼 서라벌=서불=소부리=사비 인 거임? 대체 뭐임? 그리고 딱 한 번 등장하는 고(古)소부리군이라는 지명은 대체 어디이고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임?
by 지오-나디르 | 2018/05/14 21:55 | 몽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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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at 2018/05/15 00:16
신라와 백제가 성장하여 서로 접하게 되는 시기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300년 뒤로 물려야 중국의 기록에 나오는 정황과 어울립니다. 5주갑인상인 셈인데 다 그런 게 아니고 부분적으로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at 2018/05/15 00:21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우로장군이 왜군에게 살해되었다고 되어있지만 일본서기 대로 신라왕 우류조부리지간이 살해되었을 겁니다. 고려왕 추가 살해된 것을 고려장수 연비가 살해된 것으로 왜곡한 것과 같은 맥락이죠.
Commented by 미군철수 없으면 반역 at 2018/05/15 00:24
신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매우 많습니다.
http://qindex.info/d.php?c=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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