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조선반도의 수수께끼 (6) - 백제 초중기 왕사
지난번 글 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백제의 초중기 기록은 너무나도 빈약하고 서로 너무나도 불일치하여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물증을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런거 생각하다 매일같이 머리통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1. 십제/백제의 시조는?

추모-온조
우태-비류
(위)구태? 고이/구이?
추모-음태귀수
...
시조부터 사료들마다 제각각이라 답이 없다... 개막장...

일단 본인 판단으로는 추모-온조는 그냥 후대의 교통정리가 아닐까?
백제가 스스로 고구려에서 밀려나서 내려온 방계라고 표방할 이유가 없다.
동명이랑 추모랑 혼동을 했다고 보는 편이 낫지 않은가...? 후세 사람들도 그랬듯이...
게다가 온조라는 이름 자체가 뭔가 부자연스럽다. 모든 이의 임금님 같은 뉘앙스.
...
상고한어~중고음 재구에 따르면,
台는 臺의 약자화가 되기 이전 과거에는 '이'에 가까운 발음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따라서 구태=구이=고이 가 되어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우' 발음과 '구' 발음으로 나뉜 것들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현재 베트남에 남아있는 '응우엔(Nguyễn)' 발음 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서가 상고한어 시절의 내용을 중고음 시절에 기록한 것이라 혼란스럽긴 한데...
계속해서 언어학적 연구 성과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측의 음으로 기록한 음태귀수는 무엇일까?
귀수는 귀수겠고... 음태? 설마 우태인가? 고민을 해 봤는데...
이건 음태+귀수 가 아니고, 음+태귀수 로 봐야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음=온(모든)?, 태(太)귀수는 한자 뜻대로 귀수 중에서도 크신 분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
결국 온조를 의미하는 것인가?
이쯤에서 초고/소고 도 귀수처럼 뭔가 특별한 뜻이 있는 칭호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당연히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쪽은 고구려의 추모인지 동명의 음차인지 모를 도모왕을 언급하고 있으니 빡친다.

뭐 절충하면 백제에 부여(+고구려)계가 2~3번에 걸쳐 크게 유입됐을 수도 있으려나.
그런데 그게 언제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초기에 주요 인물들 중에 우(憂, 優)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고구려의 연나부 우씨랑 같은 계통인지 뭔지도 불분명.
신하니 왕의 동생이니 또 제각각인 것을 보면 어쨌든 긴밀한 관계였던 것이긴 하겠다.
을음, 해루, 흘우 등등 다 백제 지도층이 부여(+고구려) 계통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듯.


2. 다루, 기루, 개루

얘네들은 실존 여부가 불분명.
일단 이름은 부여계에 걸맞게 붙인 것 같은데 실체가 없음.
일본 초기 왕사처럼 그냥 다들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짱 오래됨~ 이런 수준.
다만 고이왕이 초고왕 계통을 부정하고 개루왕 계통이라 주장했다면, 있긴 있었을 수도.


3. 초고-귀수/귀류, (근초고-근귀수)

어느 정도 확인 가능한 시조 후보 1번.
뭐 일단은 존재했겠는데 2주갑인지 3주갑인지 장난치다 동일인들이 중복이 된 건지,
정말로 이런 식으로 이름을 계승해서 정통 계보를 주장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후세에 개로=근개루가 나오는 걸 보면 '근(近)'이란 것은 '큰' 이나 '2세' 가 아닌,
사관 기준에서 단어 그대로 '최근의' 라는 뜻으로 써서 혼동을 피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고이왕계와는 구분되는 계통이겠다.



4. 고이/구이(구태?)

어느 정도 확인 가능한 시조 후보 2번.
위에 말했듯이 台는 '이' 발음의 글자로 사용되던 시절에 쓰인 것일 수 있다.
유독 초고-귀수 만 앞뒤로 반복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 상의 혼동 또는 오류이거나, 이 호칭들이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그런 것일까?
고이왕대는 비교적 일관성 있게 기록이 나오기 시작하고 교차가 가능해 보이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따라서 연대상으로도 그럭저럭 맞아 돌아가기 시작하는 기점이 될 수 있겠다.
아무튼 초고왕계와는 구분되는 계통이겠다.



5. 비류, 근초고-근귀수/귀류

시조 비류와 비류왕의 관계는 알 수가 없다.
그냥 흔했던 이름인 것인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인지...
뭐 신라도 보면 미추'왕'과 금석문에 나오는 일반인(?) 미추가 있고 하니... 모르겠다.
(이 '미추'는 심지어 미추홀=매소홀 관계 때문에 더 머리 아파온다만, 일단 통과.)

아무튼 근초고왕 대부터는 백제 왕들의 계승이 비교적 분명해진다.
따라서 그 뒤로는 별로 궁금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비류의 정체가 오리무중일 뿐.
이것 때문에 이 계통이 초고왕계인지 아니면 또 새로운 계통인지 알 수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중)시조 후보들인 온조, 초고, 고이, 비류 모두가 재위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건국시기 늘려잡기의 결과일 듯.

부여계가 들어와 '십제'라는 국가를 만들기 이전에도 선주민의 계보가 있었을까?
부여계는 몇 번에 걸쳐서 유입되었을까?
앞으로도 이런 의문점이 해결될 길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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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해 놓고,
정리하자면, 정리가 안 된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어떤 시나리오든 허점은 생기는 것 같다.

대략적으로 상상해 본 시나리오:

부여계 지도자가 있었는데,
공손씨의 지원 하에 대방군 영토에 걸쳐진 임진강변(하북위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낙랑군을 견제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말갈예맥이나 3한과의 완충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바다 쪽으로 진출하다 보니 미추홀(위치 불명)과 일찍 통합이 되었다.
미추홀도 토착 원주민 세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통합이 이루어진 시대는 불명이다.
초장부터 낙랑과 말갈의 압박이 심해서 한강변(하남위례) 쪽으로 이사가서 마한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게 십제라는 국가는 마한 연맹의 이질적인 유력국가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 대대적으로 군사를 내어 목지국을 멸하고 순식간에 금강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여기까지가 고이왕대까지의 행적이다?
그러나 바로 낙랑, 대방, 말갈 등 북방에서의 갈등으로 인하여 일시적인 혼란을 겪었고,
결국 고이왕계는 몰락하고 비류왕계가 대두한다. '백제' 라는 국명도 이 쯤에서 확립했으려나?
(근)초고왕은 국가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진 뒤 먼저 남쪽으로 출병하여 호남지역을 휩쓸었다.
호남(+영남)지역에 있던 수많은 소국들은 백제의 종주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때를 틈타 고구려가 남진하면서 백제의 남정은 제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없었다.
...
그 후 백제는 계속되는 내우외환에 동성왕~무녕왕 대에 왕권이 강화될 때까지 긴 암흑기를 보내게 되며,
마한(신미)~변한(가야)의 소국들은 백제-신라-일본 사이에서 줄을 타며 어느정도 독자성을 유지하게 된다.
일본의 힘으로 세력 균형을 이루던 시절이 임나일본부 설의 시작이다.
끝~
 우웩.
  진짜 정말 백제 왕사는 토나온다.


빨리 수천 억을 들여서 풍납토성을 더 파헤치고 석촌동 고분군도 재조사 해야 함...
9호선을 파고 있을 때가 아니었음...
덤으로 천안 직산에 있던 목지국도 더 조사해보자...
마한 중심세력이 고이왕 때 망한거니 비류왕 때 망한거니 근초고왕 때 망한거니...
ㅠㅠ

by 지오-나디르 | 2018/12/02 17:00 | 몽상 | 트랙백 | 덧글(1)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10- 냉면의 참맛?

요즘 황적황, 또는 황교안씨라고도 하는 요리평론가(?) 관련 유머가 유명해서 말인데,
그렇잖아도 얼마 전에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소싯적 드셔본 냉면에 대해 여쭤 볼 기회가 있었다.
내 할아버지는 평양 출신이고 해주~개성 쪽에서도 지내셨고 평양냉면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아쉽지만 평양에 사실 적에는 너무 어려서 그렇게 잘 기억나는 편은 아니라고 하신다.
일단 할아버지 기억 및 취향은 다음과 같다고 하신다.

1. 그 때도 냉면에 식초랑 겨자를 뿌려서 먹었다. 지금도 그게 좋다.
2. 냉면집에서 배달도 했다.
3. 겨울철에 뜨끈한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먹는 맛이 좋았다.
4. 현재 남한에서는 평양면옥이나 그런 계열들이 취향에 맞는 편이다.
5. 면발은 잘 모르겠다. 그게 메밀인지 뭔지...

그럼 국물맛이란게 동치미 국물 같은걸로 만들었던 건가요? 했더니,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시는 모양이다. 일단 직접 만들어 보시질 않았으니.
그래서 내가 그 때 아지노모도(미원) 많이 유행하지 않았냐고 여쭤보니,
맞다고 하심. 어머니의 손맛이니 한게 다 아지노모도일 수도 있겠다고 하시면서 마침.

그러다가 초계국수 이야기도 나왔는데 파주 법원리의 ㅊㄹㄱ 초계탕 국물도 좋다고 하심.
냉면은 평양면옥(장충계, 논현동)이랑 도심에 있는 뭐였는데 이름 기억 안 나는 곳이 입맛에 맞고,
우래옥은 조금 별로라고 하심. (나는 우래옥 좋아한다.)

어쨌든 할아버지께서 김치말이국수나 초계국수 같은 것도 좋아하시기 때문에
냉면국물은 육수+동치미+아지노모도를 적절히 배합하되 비교적 밍밍한 편이고,
고명을 특별히 많이 얹어서 먹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고,
할아버지 취향인 식초와 겨자를 뿌려먹는 것도 나름 당시에 있었던 모양이다.

공신력 있는 꺼라위키를 켜 보니 대충 일치하는 편인 듯 하다. 식초와 겨자 빼고.

사실 나도 식초는 듬뿍 쳐서 먹는 것이 취향인데 그냥 난 시큼한 걸 꽤 좋아한다.
차고 시큼해야지 더운 여름에 축 늘어지는 피로도 좀 풀리고 좋은 것 같다.
할아버지와는 달리 난 겨자는 별로 안 넣는다. 코가 너무 찡한 것은 별로라서.

by 지오-나디르 | 2018/10/02 23:20 | 연방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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