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조선반도의 수수께끼 (4) - 고구려 왕호와 왕릉과 계보
고(구)려 왕들은 민중왕부터 광개토왕까지 대다수가 무덤의 위치로 왕호가 전해지고 있다.
특이하면서도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기록상으로는 모두 국내성 시대 (중간에 자꾸 평양성이랑 왔다갔다 하는데 정확한지 불명) 이다.

민중왕 - 민중원
모본왕 - 모본
태조왕 - ?
차대왕 - ?
신대왕 - 고국곡
고국천왕 - 고국천
산상왕 - 산상
동천왕 - 동천/시원
중천왕 - 중천
서천왕 - 고국원
봉상왕 - 봉상
미천왕 - 미천
고국원왕 - 고국원/국강상
소수림왕 - 소수림
고국양왕 - 고국양
광개토왕 - 국강상

대충 순서대로 살펴보자면, 민중왕은 최초이지만 최후로 동굴에 묻혔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후세에 보기에 무덤도 없는 존재라서 이유를 만들어냈던 모양이다.
모본왕은 모본 사람에게 시해당해 모본에 묻혔다고 한다. 뭔지 모르겠다.

그 다음은 왕계가 바뀌어서 태조왕과 아이들 시대.
일단 차대왕대까지는 왕계와 재위기간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잘 반영해서 무덤 위치도 안 나온다.
그러다 다시 왕위 계승이 안정되는 것으로 보이는 신대왕은 고국곡에 장사지낸다.

고국(故國)은 이 때부터 줄창 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같은 지역일 것 같다.
일단 국(國)이 국내성 지역이라는 것은 짐작 가능한데 문제는 어차피 다 이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과연 국내성을 기준으로 어느 쪽 지역이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 왕릉들은 남아있는 유물이 별로 없다.
학자들이 얼마 안 되는 유물들을 바탕으로 추정은 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 확실한 것부터 보아야겠다.
고국=국강상 이 어느 정도 유추되므로,
가장 최근대인 고국원왕, 고국양왕, 광개토왕은 같은 지역에 묻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3명은 직계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쉬운 것 아닐까?
우산하 지역을 고국으로 간주하고 992호분은 고국원왕, 태왕릉은 고국양왕, 장군총은 광개토왕.
소수림왕은 직계가 이어지지 않기도 하고 이름 상 따로 떨어져서 천추총.

하지만 기타 여러 문제로 인해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일단 왕릉인지 아닌지 애매한 존재들부터 해결해야 한다. 황니강대묘라든가... 540호, 2100호...
기록상으로는 당시에도 서천왕릉과 미천왕릉은 1회 도굴당했으니 새로 만들었다거나 그랬다면...
흠... 혼란하다 혼란해.

게다가 서천왕은 비교적 서쪽에 묻혔을 것 같지만 고국원에 묻혔다고 하고 고국원은 추정 동쪽이다.
으아아~ 물론 도굴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더 이상의 기록이 없으니~
산상왕은 좀 높은 곳에 묻힌 모양인데 문제는 추정되는 왕릉들 중 여러 개가 높은 곳에 있다.
빌어먹을 1발기 2발기 때문에 고국천왕과 산상왕의 관계까지 헷갈리는 판이고...
걸핏하면 왕의 유능한 형제들이 튀어나오는 시기라 이들의 무덤이 축출된 왕의 무덤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신라 왕릉이야 더 파보면 뭔가 더 나오겠다만,
고(구)려는 워낙 도굴이 쉬워서 안타까운 부분이다.
왕릉으로 여겨지는 무덤 중에 사실은 왕의 동생이나 왕비의 무덤도 있는 것인지,
모본왕 차대왕 봉상왕 처럼 축출당하고 계통이 바뀐 경우 이들의 무덤도 왕릉의 예법을 따르는지,
현재로서는 영영 밝혀내기 어려울 것 같다.

by 지오-나디르 | 2018/05/21 01:50 | 몽상 | 트랙백 | 덧글(1)
고대 조선반도의 수수께끼 (3) - 신라 초기 역사의 혼란
신라 초기는 고의적으로 윤색하거나 소급한 내용들이 눈에 띄는 편이다.

1. 연대의 인상 - 조선인들은 일본서기의 2주갑인상을 죽어라고 까대지만, 따져보면 신라도 1~2갑자 정도 인상시킨 듯한 기록들이 눈에 띄는 편이다. 파사왕의 정복기록이나 나해왕의 포상팔국의 난, 가야 세력의 수로왕과의 교류 기록, 왜 세력이 남긴 기록과의 교차검증 등을 함께 비교하며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2. 3대 성씨의 도입 - 금석문을 비롯해 각종 기록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박석김 3대 왕성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반적으로 진흥왕 김+삼맥/심맥 시대 정도로 추측된다. 나물왕 이전에는 현대 유교적 종법이 적용이 되지 않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의심되며, 부계 계승과 모계 계승이 혼재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표적인 증거로 '갈문왕'이 있다. (예시를 들자면 박아도와 김아도가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길어지니 넘어가고...)

3. 6부의 명칭의 소급 - 금석문에서는 왕이 속한 부 또는 왕위의 직계나 부계 계승이 일어나는 부는 喙(훼/탁)부, 왕비가 속한 부 또는 왕위의 방계나 모계 계승이 일어나는 부는 사(沙)喙(훼/탁)부라고 하고 있고(갈문왕은 여기 속하는 것 같다?), 나머지 4개 부는 들러리로 나오는 것 같다. 이러한 호칭은 명백히 삼국사기 등에서 나온 6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4. 각간? 대보? 서불한? - 이 3개의 직위는 훗날 모즉지(법흥)왕 때 확립되었다는 17관등과는 또 다른 체계인데 뭔지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직책은 서불+한인데, 일본측 기록에서는 소부리+지+간이라고 나온다. 그럼 서라벌=서불=소부리=사비 인 거임? 대체 뭐임? 그리고 딱 한 번 등장하는 고(古)소부리군이라는 지명은 대체 어디이고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임?
by 지오-나디르 | 2018/05/14 21:55 | 몽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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